자기소개 페이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괜찮아보이는 사이트의 레이아웃을 따라 해 보기도 했고, 유튜브 강의를 보며 따라 만들어보며 주말에
코딩수업 때 배운
것들로
이것저것
붙여보았습니다 ^^
가까운 미래에 자유자재로 웹페이지를 만들어보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면서 제 소개를 시작합니다!
** P.S 적극적인 피드백 미리 감사합니다! 하다가 문득 아 갈길이 멀구나 싶습니다. 화이팅 해봐요! **
저는 3월 1일 서울 강남으로 왔습니다.
미리 공부도 하면서 건강하고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였는데 시기가 요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심란합니다.
대부분의 저와
같은
분들이
아마 개발 공부를 위해 퇴사를 많이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 좋은 결심을 첫 실행으로 옮겼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저희는 묵묵히 할 일과 공부를 할 뿐입니다.
다만, 무언가 공부하고 배운 점을 이번 기회로 적용해 볼 좋은 기회였습니다. 분명 나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하려니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건 마치 토익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외국에 가서 영어를 말하려니까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 는 느낌과 비슷하달까요?
그래서 지금 공부는 약간 정체되어 있지만, 내일부터 새롭게 뭔가를 해보면 되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여러분 ㅎㅅㅎ!
2007년에 외식 조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고 뭔가 만들고 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게 보였습니다. 입학해서 보니 조리 고등학교 등 미리 경험해 보고
온
친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기가 죽어서인지 몰라도 저의 대학교 1학년은 이것저것 재미있게 배우기 보다는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게 1년 동안 학교를 다녔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학점도
별로였습니다.
그리고 입대 영장이 나와서 2008년 군대를 가게 됩니다.
군대는 뺄 수 있으면 최대한 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전 그렇지 못했습니다.
춥디 추운 겨울 2008년 1월의 어느날, 군대를 가게 됩니다.
(글쓰는게 어째 더재밋네요?)
훈련소 입소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쯤에 엄격 근엄 진지한 군인아저씨들이 저랑 몇명을 호명하더니 따로 빠졌습니다. 오? 근데 기차가 서울로 가는거 같습니다.
송파구에
있는
어느 밀리터리 스러운 곳에 1주일을 있었는데 갑자기 티비를 틀어줍니다. 비행기에서 군인들이 집단으로 낙하산 훈련을 하는 장면이였는데 그걸 제가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주일 후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군복무 했다는 강서 화곡동 인근의 1공수여단에 최종 배치되었습니다.
군생활을 잘 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여름 땡볕의 3주간 낙하산 교육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힘든 찬스에 사용했던 엄살피우기 스킬로 빡센 훈련이
시작되자마자 드러 누웠습니다.
교관이 앰뷸런스에서 그러더라고요. 너같은 애들 많이 봤으니 그만 일어나든지 집에 (부대에) 가라고.
의무대에 가서 저와 처지가 비슷한 군인들이 말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저런 의미없는 교육을 받아 무엇하냐고 몸도 다칠텐데 죽으면 아무소용 없대서 저는 다시 훈련을 받으러
나갔습니다.
그때 포기했더라면 군대에서 하늘을 날아보는 경험은 절대 없었겠지요.
부트 캠프에서 앞으로 고생 많이 할 텐데 저희 포기하지 말고 즐겁게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1년 휴학 뒤, 다시 학교에 복학하니 너무 재밌었습니다. 모든 실습이 재미있고 중국요리 실습에서 중국교수님이 황금 볶음밥을 만들었다고 높은 점수를 받았던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와인수업에서 A를 받은 뒤로 와인의 오묘한 맛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쓰디 쓴 칠레산 와인이 젤 좋습니다. 프랑스는 제 취향이 아니더라고요. 아무튼 같은 반 멤버들끼리 교내 인도 커리 가게를 운영해 보기도 했습니다.(먹는것 담당으로) 이 때 술과 안주 요리 만들기에 약간 맛들렸습니다. 제과 제빵 때 만든 것을 다른 과 친구들에게 주고 술로 바꿔 얻어 먹었었습니다. 진짜 뭐든 다 잘되고 모두 재밌었던 시기 였습니다. 그리고 2012년도 중반 정부해외인턴사업 면접에 붙어서 싱가포르로 가게 됩니다.
비행기에서 싱가폴 슬링과 타이거 맥주를 들이키면서 뭔가 내가 잘나서 놀러 가는 기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일하면서 처참히 깨져버렸습니다. 일단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순발력과 속도가 생명인 주방에서 적응하는데 무척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약 한 달 정도 뒤에 다행히 잘 적응이 되어 쉐프 차를 타고 여행도 가 보고 혼자 여행도 다녀보고 약 일년 정도 있다가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나라가 작아서 눈감고도 다닐 수 있을 정도라 했는데 지금은 약간 모르겠네요?ㅎㅎ:)
요리를 경험해보았던 기억을 살려서 갑자기 소스 개발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식품회사에 입사해서 이것저것 많이 배웠습니다. Msg 넣으면 먹고 죽는 줄만 알았는데 식품첨가물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개발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소스(Sauce)를 개발하거나 또는 똑같이 이미테이션, 카피를 합니다. 개발은 없거나 좀 비슷한 거에서 살을 붙여 업그레이드 시킨다고 하면 카피는 기존의 잘 나가는 소스나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소스를 연구원의 관능만으로 최대한 똑같이 맛을 구현해야 하기에 접근에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해결을 하고 난 뒤에는 마치 내가 대단한 미각을 가진 것인 양 스스로가 뿌듯해 졌던 거 같습니다. 그것을 위해 키샘플을 구하는 방식은 각양각색입니다. 음식점에 가서 사장 모르게 수저로 소스를 긁어 담는다든지.. 등등.. 여기까지만~~ 대형 마트에 가서 제가 개발한 소스나 즉석조리식품이 판매 진열대에 보이면 약간 반갑긴 하지만 그렇다고 구매를 하지는 않습니다:)
2020년 2월 말 까지 근무를 마지막으로 약 6년간의 첫 사회생활을 마무리 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좋았던 점을 떠올려보면, 먼저 회사를 다님으로 인해 그 안에서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 혼자 해외 여행을 다녀보면서 나이가 많고 적음은 개인의 상대적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살짝 충격적이였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됩니다. 챔피언스리그 주제가를 들으면서 아, 나도 여기서 살면서 실컷 축구 보고 싶다 이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 대부분을 현실로 만들고 싶습니다. 비슷한 목표를 바라는 분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발전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